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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2006/11/26 빛의 제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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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의 여러 사물에 대하여 갖고 있는 평범한 지식은 회화에서 그 표현방식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.
사물의 꾸밈없는 신비는 현실에서 그러하듯이
그림에서도 주목받지 못한 채 간과될 수도 있다 ···
만약 감상자가 내 그림이 '상식'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분명한 것을 깨닫는 것이다.
그렇지만 내게 있어서 세상은
상식에 대한 도전이라고 덧붙이고 싶다.                  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

- 르네 마그리트.



단 하루 동안 인생을 통째로 다시 산 한 남자 이야기
“어느 여름밤, 나는 침대에 누워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. 문득 간첩, 그것도 남파된 지 이십 년이 넘은 남자가 떠올랐다. 그 동안 그저 조금 위험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만 믿었던 이 남파간첩에게 어느 날 갑자기 귀환 명령이 떨어진다. 남은 시간은 하루. 그는 그 하루 동안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한다.

가족, 사랑, 직업과 추억,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버려두고 떠나가야 하는 것이다. 시작은 근사해 보였다. 나는 벌떡 일어나 구상을 적기 위해 노트를 펼쳤다. 스파이의 이야기지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. 보편적인 한 인간의 이야기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썼다.”


기억하라,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
“그 인물이 내 머릿속으로 ‘찾아왔을‘ 때 동시에 두 가지가 떠올랐다. 하나는 폴 발레리의 시구였다. 정확히 어느 시에서 읽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, 그리고 이제는 무슨 경구처럼 씌어지는 구절이지만, “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”는 문장이었다.


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잘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다. 그리고 어느 샌가 긴장도 감각도 무뎌진 채 그저 하루하루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. 그러다 어느 하루, 인생에 대한 감수성이 극으로 치닫는 것이다.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달라 보이고 낯설어 보인다. 그리고 문득 그야말로 아무것도 감각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고 있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.

그러므로 그 귀환 명령은 어떤 면에서 그의 정신적 잠을 깨우는 역할도 하게 되는 것이다.


다른 하나는 르네 마그리트의 <빛의 제국> 연작이었다. 그 연작 속의 세계는 조심스럽게 뒤집혀 있다. 마그리트의 다른 그림처럼 대놓고 부조리하지 않고 자세히 살펴봐야 무엇이 이상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.

하늘은 청명한데 땅은 어둡다. 가스등이 켜진 거리, 나무들은 검은 그림자에 묻혀 있다. 집의 창문에서는 램프의 불빛이 은은히 비쳐 나오지만 밖은 엄연히 낮이다. 내 소설의 주인공이 사는 세상이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. 혼자만 어둠 속인 혹은 혼자만 대낮인, 그런 세상. 그러다 갑자기 어느 하루, 그것마저도 뒤바뀐다.”


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,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
“이 소설은 엄밀한 의미에서 ‘말하고자 하는 바’가 없다. 아니 있지만 계속해서 그것을 지워나간다. 소설적 현대성에 대한 이런 지향이 제대로 실현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소설을 읽음에 있어 ‘이야기’에만 집중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바람이다. 물론 이 소설은 ‘잘 읽힐’ 수도 있을 것이다.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,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,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.”


『빛의 제국』은 원고지 1천5백매 분량으로 저자가 쓴 가장 긴 소설이다. 집필시 몇 번이고 처음부터 새로 쓰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돌연 문예지 연재를 중단하고 문장, 시점, 구성 등 등장인물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꾸어 다시 썼다. 오히려 방해가 될까봐 방북 취재는 일부러 하지 않았고, 대신 탈북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참고해 평양을 묘사했다. 특히 저자와 동갑인데다 평양에서 영화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 유학까지 한 탈북자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.

탈북 시인 최진이씨와 그 부군은 초고를 읽고 코멘트를 해주었다.

한 편의 숨가쁜 스파이 영화처럼 『빛의 제국』은 여러모로 무거운 소설임에도 시종일관 잘 읽힌다.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이 소설의 경우 그것은 장점이 될 수 없다. 잘 읽히는 것은 ‘이야기’일 뿐이다. 이 소설은 그 이야기의 밑바닥에서 ‘말하고자 하는 바’를 스스로 지워나간다.

주인공의 의지, 소통 등은 주인공이 의식할 수 없는,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소설의 ‘형식’에 의해 서서히 허물어져버린다. 에셔의 판화를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형식 실험이다. 『빛의 제국』이 잘 읽힌다면, 그것은 저자의 실수가 아니라 독자의 오독이다.


- 김영하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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쉼없는/읽어담고 l 2006/11/26 01:2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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